STORY OF JAZZ
째즈의 역사는 째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째즈는 많은 장르, 다양한 형식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째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째즈의 초기시대에서 1960 연대 프리째즈가 등장하기까지의 째즈의 역사에는 대부분 공통된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말 그대로 프리째즈(free jazz)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째즈의 기본인 swing, improvization, 싱코페이션 등은 철저히 분해 되고, cross over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장르들을 포용( 장르를 넘어 뭐가 뭔지도통 모르겠는) 하게 되는 다시 말해 째즈의 색깔을 잃어 버리게 된다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 따라서 째즈의 역사를 말하기에는 cool jazz까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그 이후의 째즈는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째즈 역사는 크게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째즈의 역사구분에는 편의를 위해 10년 단위설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며 나 또한 등장시기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우선적으로는 두 가지 시대의 구분은 정통째즈( 또는 고전째즈)와 모던째즈로 나뉜다. 정통째즈는 new orleans시대부터 swing까지이며, 이 시대의 째즈는 댄스음악이었으며, 2,4비트 위주의 소박한 이듬이었다. (jazz 음악 자체로 결코 주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그러한 경향의 반발로 bob시대가 열렸지만, 야튼 밥시대 이전의 째즈를 정통째즈라 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cool jazz의 등장은 jazz를 유흥, 댄스곡에서 감상용 음악으로 classic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때부터의 째즈를 modern jazz라고 한다. 째즈음악이 대중적인 지휘를 확보하며 classic과 같은 서열에 서기까지는 swing과 bob시대의 jazz musician들의 노력과 변화추구의 결실의 산물이라고 보는게 좋을 듯 싶다.
1) 1890연대 랙타임(ragtime)
2) 1910연대 뉴올리안즈 째즈(neworleans jazz)
3) 1920연대 시카고 째즈(cicagojazz)
4) 1930연대 스윙 째즈(swing jazz)
5) 1940연대 비밥 (bibob)
6) 1950연대 쿨째즈(cool jazz)
7) 1960연대 프리째즈(free jazz)
8) 1970연대 퓨전째즈(fusion jazz)
9) 1980~90연대 contemporary
1) ragtime jazz
째즈 역사 시초를 ragtime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으로는 랙타임엔 째즈의 기본요소가 빠져 있으므로 뉴올리안즈를 시초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랙타임이 째즈던 아니던 랙타임은 째즈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우선 랙타임을 얘기하기 앞서 째즈의 기원은 아프리카 토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미국으로 끌려오면서 아프리카 음악이 유럽의 전통적 folk와 classic과 접합하면서 흑인영가 (negro spiritual), 블루스, 노동요등으로 나오게 된다. spiritual은 흑인영가로 그들의 토템, 무속신앙이 백인 사회의 기독교로 귀화되면서 신께 그들의 불쌍한 처지를 위해 기도한다.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을 부르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을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그들에게도 자유와 해방의 꿈을 기도한다. 반면 블루스(blues)는 spiritual의 세속화된 형태라 볼 수 있다. 흑인 영가가 희망적이고 밝은데 비하면, 블루스는 'blue'에서 알 수 있듯이 암울하고 비참하고 세속적인 흑인들의 삶을 반영한다. 블루스는 1920~1930연대에 최고의 진가를 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요는 노동을 하면서 집단적으로 부르는 가무형태로 선창자가 부르면, 다같이 합창하는 식의 call and response형식이다.
그럼 랙타임으로 넘어와서 ........ 'rag'이란 '이그러지다'라는 뜻이고 time'은 마디를 뜻한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인데 째즈를 불협화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같은 맥락이다. 피아노 건반으로 왼손은 정확한 리듬의 반주를 잡고 오른손은 화성을 무시한 채 제멋데로 피아노 건반을 뒹군다. (물론 나름데로 규칙은 있다.) 쉽게 생각해서 랙타임은 서부영화에서 보면 bar에 앉아 술마시러 오는 카우보이들은 위해 '뚱땅'거리는 피아노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지.... 대표적 인물로는 제리 롤 몰튼(jerry roll molton) 스콧조플린(scott joplin)등을 들 수 있다. 스콧조플린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그가 많은 넘버1의 히트곡들을 기록했는 지 보면 놀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영화 '스팅'에 삽입되었던 'entainer' 나 'maple leaf rag'정도를 들 수 있다.
2) neworleans jazz (1900~25)
째즈의 성립에는 크레올(creol)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레올이란 프랑스인과 흑인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크레올 계층은 신분적으론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나, 링컨의 노예해방(1865년)이후에 지위가 약화되어 흑인과 백인의 중간정도의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정식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되었으며, 흑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경을 받게 되었다. 남북전쟁이후 많은 군악대 악기들이 민간으로 유출되면서 흑인들은 악기를 갖을 기회가 생겼다. 이런 악기의 연주를 가르친 이들이 크레올들이다. 특이 이러한 경향은 루지애나주의 뉴올리안즈(neworleans)에서 강하게 나타났고, 곧 뉴올리안즈에는 많은 연주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악대에서 사용한 악기들은 주로 관악기들이었고( 튜바, 호른, 트럼팻, 트럼본 등), 당시의 음악은 째지는 듯한 관악기 연주로 기악곡이나 행진곡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시의 흑인들은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조직하여 파티, 연회장, 결혼식 , 카니발 등을 돌아다니며 연주했다. 흑인들은 정규적 교육을 받지 못해 화성법이나 악보를 사용했을 리 없었고, 언제나 즉흥적이었고 밴드 연주자들은 호흡을 맞춰 집단적으로 연주했다.
한편 뉴올리안즈에는 '스토리빌(storyville)이라는 곳이 있었다. 스토리빌은 지금으로 말하면 유흥가로 많은 선술집과 홍등가가 들어서 언제나 흥겹고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들이 필요한 곳이다. 당시의 많은 연주자들은 스토리빌로 모여들었다. 지금의 캬바레나 성인나이트클럽의 밴드들과 같은 처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말하자면 '딴따라'들이었다. 하기사 돈을 벌어야 음악도 하쥐.... ^^; 야튼 그렇게 해서 환경이 어땠든 째즈란 형식의 음악의 틀이 잡혀간 것이다. 최초의 재즈밴드로 알려진 것은 버디볼든(buddybolden- 트럼펫,코르넷)의 밴드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활동한 사람으로는 루이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 제리 롤 몰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키드오리(kid ory, 트럼본)등이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드니 베헷(sidney bechet)도 그 당시부터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루이암스트롱의 곡 중 'boys from neworleans'가 있으며, 지금 뉴욕재즈의 거장 윈튼 마샬리스(재즈계의 신고전주의)의 'court of king oliver' 등을 들어보면 뉴올리안즈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많은 흑인 연주자들이 째즈를 연주했지만, 정작 레코드를 처음 낸 건 백인 주자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상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여유에서도 백인들이 첫 앨범을 낸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리지날 딕시랜드 째즈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 가 첫 째즈레코드(1917년)이다. 당시는 LP가 나오기 전에 SP라 기껏해야 3~4분의 녹음이 가능했다. 듣기로는 당시의 흑인 째즈밴드보다 훨씬 더 실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재밌는 건 'jazz'란 용어의 기원도 딕시랜드 밴드의 공연중에서 있었던 일화에서 시작됐다니 배인들의 째즈기원에 대한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건가? 그건 아니쥐...^^ 나중에 카네기홀 에서 공연을 통해 째즈가 대중적 지위와 음악계의 신분상승 또한 백인인 베니굿맨(benny goodman, 클라리넷 )이 이뤄냈다. 딕시랜드 째즈밴드의 곡 중 'fidgety feet'을 들어보면 마치 톰과 제리에 삽입된 음악같은 경쾌함이 느껴진다.
야튼, 1917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뉴올리안즈의 스토리빌은 대서양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해군기지로 병참화되면서 스토리빌은 폐쇄됐다. 이유는 환락가 때문에 군사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이유였다. 요즘으로는 군기지 근처에 기지촌이나 홍등가가 생기는 걸로 보면 대조적인거 같다. 야튼 많은 연주자들은 뉴올리안즈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칸사스(cansas)나 시카고(cicago), 뉴욕(newyork)등지로 이주했다.
3) cicago, cansas city (1930 ~ 1940)
많은 연주자들이 대거 이동했고, 특히 시카고는 그 중심이 되었다. 당시 시카고는 갱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알카포네 같은 거물들이 당시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영화 '언터쳐블'을 상상하면 아마 당시의 분위기를 그릴 수 있을 거다. 당시의 많은 연주자들은 확실히 뉴올리안즈 시대와는 다른 감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북쪽으로 이동한 건 째즈음악가들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조직,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한 북부의 공업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대 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구 폭동으로 하늘 높은 주 모르는 집세의 부담을 덜고자 집세파티(rent party)를 열어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연주가 시작되었고, 집단으로 함께 연주하며 음악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얼마 못 있어 쥬크박스(juke box) 등장( 쥬크박스란 동전을 넣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듣는 기계로 영화 '타락천사'에서 인상깊었쥐.. ^^)과 동네주변 갱들의 이권개입으로 얼마 안가 사라지고, 돈 없는 뮤지션들은 밴드위주로 나아가고 점차 많은 솔로주자들과 소규모밴드들이 흡수되면서 빅밴드(big band)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빅밴드는 큰 홀이나 레스토랑에서 연주를 하면서 수입을 올린다. 이러한 빅밴드에 소속되어 있는 많은 역량있는 연주자들은 스윙시대가 지나며 독립하여 이름을 날리게 된다. 즉, 밥(bob)시대와 쿨(cool)시대의 유명한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빅밴드 단원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기량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빅밴드들은 뉴올리안즈시대에와 마찬가지로 악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째즈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 즉흥연주이다. 에드립(adrib),즉흥연주(improvisation) 등은 클래식이 철저히 악보위주의 음악인데 반해 드러나는 째즈의 특징이다. 설명을 보태자면 클래식은 악보로 남아 그 음악의 혼을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등의 연주로 재생할 수 있으나, 째즈는 그렇지 않다. 단지 레코딩으로만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곡은 소재에 불과하며 뮤지션들에 따라서, 또한 같은 뮤지션일지라도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게 째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야기가 새부렸네.. ^^: 야튼................ 당시의 빅밴드들은 연주가 있기전 연습을 통해 각자의 악기가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 지만을 대충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뉴올리안즈와 비교해 시카고 째즈의 가장 큰 특징은 솔로중심의 즉흥연주라고 볼 수 있다. 뉴올리안즈 시대의 브라스밴드는 규모가 크지 않아 모두가 같이 화음을 맞추며 제각기의 음색을 냈지만, 빅밴드에서는 한 연주자가 솔로로 연주하고 나머지 밴드들은 리듬과 반주를 맞는 식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솔로연주자가 밴드를 이끌어 갔으며 밴드의 이름도 '누구누구 and his orchestra'또는 '누구누구 and his big band'라 명명돼었다. 시카고 시대에는 악기에도 변화가 있었다. 튜바나 호른등은 사라지고 대신 드럼, 키타, 콘트라베이스 등이 리듬악기로 사용된 것이다. (그동안 악기의 발전도 많았다.. ) 따라서 기악합주곡 같은 느낌이 사라진건 당연하다. 이 당시의 인기 있던 연주자들은 대부분 뉴올리안즈에서 이주한 이들로 루이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 제리 롤 몰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키드오리(kid ory, 트럼본)등 이었다. 특히 루이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hot five, 나 hot seven같은 뉴올리안즈 식 밴드를 조직하여 뉴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연대 에는 시카고의 유행데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꿨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와'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40연대 에는 '올 스타즈 (all stars)' 악단을조직하여 뉴올리안즈 스타일로 돌아갔다. 최초의 빅밴드 형태는 뉴욕에서 20연대 초에 플레쳐 핸더슨(fletcher henderson)에 의해 조직됐다고 한다. 그 밖으론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 같은 훌륭한 연주자가 속출돼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째즈는 시카고에서 뿐 아닌 캔사스(cansas)나 뉴욕(new york),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등지 등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다. 캔사스시티에서도 마찬가지로 빅밴드 위주의 째즈였지만, 소위 '리프(riff)스타일' 또는 '콜 앤드 리스펀스(call & response)라 불리는 새로운 핫 사운드가 캔사스시티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노동요에서 처럼 한 악절을 반복하여 연주했으며 독주자들은 '부르고 대답하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다. 대표적으론 카운트베이시(count basie, 피아노)로 빅밴드의 전성기를 연다. 카운트 베이시 밴드는 많은 걸죽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레스터영(rester young, 테너섹소폰)과 찰리파커(charlie parker, 알토색소폰) (찰리파커가 베이시 연주단에 소속되어있지는 않았다..) 등을 들 수 있다.
4) swing jazz ( 1930~45)
1929년 대공황 속의 암울함 속에서 사람들은 sweet music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1935년 트루먼의 '뉴딜 정책'으로 인해 경기가 차츰 회복되면서 음악에도 활기를 띄게 된다. 이때의 새로운 활로가 스윙째즈의 등장이었다. 스윙째즈의 선구자는 루이암스트롱이다. 그 전에도 스윙적 요소가 드러나긴 했지만 루이암스트롱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여전히 빅밴드 위주의 째즈는 계속됐지만, 시카고 째즈와 스윙째즈를 구분짓는 요소가 바로 이 스윙(swing)이다.
그렇다면 '스윙'이란 무엇일까? 째즈하면 스윙음악이라고 말해도 무리없을 만큼 ~~~~ 째즈의 전신이 되 버린 '스윙'이란 말 그대로 하면 '흔들다'란 뜻인데 ..... 하긴 스윙째즈를 들으면 누구든 손장단 발단장을 맞추게 된다... ^^ 이전까지만 해도 째즈는 2박자의 리듬이었다. 첫박에 강세를 둔 2박자 리듬이었으나 스윙시대에 오면서 째즈는 4박자 리듬으로 두 번째 박자에 강세를 두는 형식이다. 즉, 'one and two and three and four' 식으로 'and'에 강세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리듬은 심리적으로는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들이고 박자와 리듬에 빨려들어가는 흥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데.....음.....모.... 잘은 모르지만 난 그런거 같다. 또한 스윙째즈의 특징으로는 싱코페이션(물론 랙타임때부터 계속 되어왔지만)을 들 수 있다. 싱코페이션이란 '당긴다' '땡겨주다'란 뜻인데 ... 가령 4분음표 2개가 연이어 있을 때,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2/3, 1/3의 비율로 나누어 긴장과 완화를 전달한다. 야튼 째즈음악을 들으면서 뒷꿈치를 들석이며 4박자가 맞춰진다면 스윙이라 생각해도 무난할 것이다. (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 ^^; , 참고로 그렇게 들을려면 리듬파트를 들어야겠쥐....즉, 베이스, 드럼에 귀를 귀울이면 스윙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겨..)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베니굿맨(bennygoodman, 클라리넷)은 째즈의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당시 베니굿맨의 밴드는 여기저기서 실패를거듭한다. 베니굿맨이 guest로 나와 스윙째즈를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고, LA로 건너가 팔로마 볼륨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를 필두로 베니굿맨은 카네기 홀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갖게 되고 이로써 째즈는 클래식과 같은 고급음악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며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베니굿맨의 음악은 얼마전 TV선전 모 맥주회사의 광고 '라라라~~ '시리즈 2에 나왔다..'sins sing sing'이라는 '라라라'음악중 리듬 빠른거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 연주가로는 '듀크엘링턴(duke ellington, 피아노), 카운트베이씨(count basie, 피아노), 해리제임스 (harry james, 트럼펫), 콜맨호킨스(coleman hawkins, 색소폰), 글렌밀러(glenn miller,트럼본), 아트 타툼(art tatum, 피아노)등을 들 수 있고 보컬로는 너무나도 유명한 빌리할러데이(billy holyday), 엘라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등과 처음으로 '오빠부대'를 동원한 핸섬한 프랭크시나트라(frank sinatra)등이 있다. 참고로 얼마전 글렌밀러의 'in the mood' 또한 모 신발회사 광고에 삽입된 적이 있다.
5) bibob (1940~1955)
이 시기에 와서는 째즈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인 음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러한 비밥의 시대를 처음 연건 찰리파커(charlie praker, 색소폰)이다. 이 시기는 한창 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때였고 '군수물자 조달청'에서 '댄스'를 과세대상에 포함시켜 째즈는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고 대다수의 빅밴드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꼭 여기에 따른 반발이었는 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별안간 사람들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듣게 된다. 그건 비밥(bibob)의 시작이었고, 찰리파커(charlie parker)를 선두로 디지길레스피(dizzy gillespie, 트럼펫), 텔로니오스 몽크( thelonious monk, 피아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등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시도된다. 비밥의 특징은 강한 음색과 빠른 리듬, off bit(스윙에서도 이건 같지만..^^)등으로 스윙이 리듬에 충실한 반면 비밥은 멜로디에 충실하게 되면서 도저히 따라 출 수 없게 끔 빠르게 연주된다. 또한 스윙은 음역이 단순한 반면에 비밥은 무척 화려해지고 현란해진다. 디지길레스피의 'night in tunisia'를 들어보라.. .처음엔 쿨(cool)아냐? 하다가 어느순간부터 비밥의 본색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재즈는 댄스와 결별하게 된 것이다. 스윙시대만 하더라도 째즈연주자들은 ( 유명한 솔로연주자들을 제외하곤) 음악이 끝나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사라져 버렸고, 단지 사교댄스를 위한 부유층백인들의 소도구에 불과했었다. ( 대부분이 그랬다는 것이다. .... 물론 뉴욕할렘의 연주자들의 경우야 달랐겠쥐... 그들은 흑인과 어울렸으니깐..) 야튼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빅밴드는 해체되고 다시금 소규모 밴드 위주의 캄보 밴드(combo band) 가 구성되게 된다. 캄보밴드는 4~5명의 연주자들로 이루어졌으며 드럼, 베이스, 피아노, 섹소폰 or 트럼펫으로 이뤄진 밴드다.... ( 대부분 그 후로 전자악기의 사용을 제외하곤 째즈밴드는 이런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되 온다..) 그렇게 그들은 소규모 밴드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해 나가게 된다. '밥'은 그냥 아무 뜻 없이 내는 소리다.( 이런 건 루이암스트롱이 잘 했다던데....이런 싱어를 스캣싱어라 한다...) 언젠가 루이암스트롱이 연주도중 악보를 떨어뜨려 '뚜비두..밥밥...밥밥...~~~~ ' 이라는 소리로 리듬을 맞추며 재치로 위기를 모면했다하여 '밥'이란 말이 나왔단다... 역시나 이 비밥에서도 쉴새 없고 끊이지 않는 리듬과 빠른 비트, 높은 음계의사용에서 겨우 '비비비 밥밥밥..~~~' 하며 입으로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우수운 유래가 된게 아닌가...... 40년대의 비밥의 즉흥연주는 당시에는 외면당했다. 이런 특이한 음악은 쿨째즈로 오면서 예술적음악으로 분류하면서 대중적으론 스윙에게 계속 압도당하게 된다. 야튼.... 이렇게 해서 비밥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50년대 한국전쟁과 동시에 cool 이 선보이게 된다.
6) cool jazz (1950~1960)
2차대전이 끝나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한마디로 쿨했다. 왜냐면 냉전(cold war)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광등의 발명과 공중파 라디오의 확산과 스테레오, 12인치 LP의 등장은... 이 때의 큰 변화이다. 당시 전후의 미국인들은 짧은 머리에 파리한 색체의 dressy한 분위기가 유행했단다. 음악 또한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듣게 되고.. 쿨(cool)한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음악을 즐겨 들었다. 째즈가 그런 분위기에 편승했는지는 모르지만 뉴욕을 중심으로 그런 기운이 퍼져나갔고,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냉정한 분위기로 흘렀다. 그렇다 해도 결코 리듬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윙시대 이후의 리듬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야튼, 이러한 분위기의 대표적 인물이 '마일스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이였다. 마일스데이비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며 그는 재즈(모던째즈라 하는게 더 옳을지도..)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해도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특출한 인물이다. 가끔 찰리파커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둘이 추구하는 색깔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마일스데이비스는 찰리파커 밑에서 배웠으나 오히려 레스터영의 차분하고도 지적인 쿨의 경향을 따랐다. 야튼.. 찰리는 천부적으로 감각을 타고났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일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추진 못했다. 마일스의 위대함은 그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음악에서 무서우리만큼 완벽을 추구한다. ( kind of blue 앨범 중에서 'all blues'를 들어보라...) 이때부터 째즈는 악보에 꼼꼼히 적어나가며 학문적인 연구마져 이뤄진다. ... 악보에 충실하면서 각 세션(session)맨들과의 조화 형식에 있어선 '테마(멜로디) -> 솔로 -> 테마(멜로디)로 정형화 해간다. ( 사실은 더 복잡한 구조지만..간단하게..^^) 이 시기에 있어서 또다른 특징은 클래식의 화성법, 대위법, 12음법 등의 차용등이다. 그러나 결코 클래식을 따라한건 아니고... 클래식의 기법만을 빌린 것임...~! 따지면 클래식도 째즈의 기법들을 많이 빌려간다. 예를 들어....음 조쥐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rapsody in blue)'같은 곡들... 또 음.... 드뷔시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이들이 그랬다나? 하여간, 이 시기의 재즈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차분해 지고 조용해졌으며, 지적이며, 쿨해졌다. 사람들은 라디오와 스테레오, LP를 통해 째즈를 감상용 음악으로 듣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연주자로는 마일스데이비스(miles davis)를 기수로 하여 리 코니츠(lee konitz, 앨토색소폰), 레니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피아노), 데이브브루백( dave brubeck, 피아노) 마지막으로 모던째즈 4중단(modern jazz quortet)등을 들 수 있다.
7) free jazz (1960~ 이후.....)
1950년대 말에는 흑인 째즈 뮤지션들의 민족의식이 고조되었고 인종 차별에 항거하는 형태를 갖춘 째즈도 몇몇 작품이 만들어졌다.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소니 롤린스등이 그러한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화된 사조는 아니었고 음악적인 성과라고도 반드시 결론지을 수도 없었다. 그러한 사조보다도 째즈 팬들에게 커다란 쇼크를 가져다 준 것은 58년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오넷 콜맨(Ornette Colman)이라는 뮤지션이다.그는 원시적인 생동감과 째즈 특유의 무기오 단숨에 째즈 씬을 정복해버렸다.이전의 째즈에 습관화된 째즈 팬들의 귀에는 어떤 표현하기 힘든 기묘하면서도 조잡한 사운드로 들리기도 했다. 그는 기법과 리듬을 빼 버린 것 같은 연주를 째즈 팬들 면전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변형되고 추상화된 연주는 째즈의 미학적 의식을 변혁시킬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사운드로 가득차 있었다. 하드밥이 일어난 시기와 같이 찬반 양론이 휘몰아 쳤고 일부서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구 치부하는 부류도 적지 않았으며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들의 파괴적이고 기존의 틀을 부정하는 사운드의 이면에는 새로운 째즈의 탄생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으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프리 째즈를 단순하게 실험적인 째즈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당위성이 없다. 58년 오넷 콜맨(Ornette Colman)이 처음으로 째즈 씬에 나타났을 때는 그토록 기묘하게 울리던 연주도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째즈 역사의 한 토막으로서 명쾌한 사운드를 가진 째즈의 전통속으로 흡인되었다. 그렇다고 오넷 콜맨류의 연주가 결코 째즈의 사조로부터 제외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밥이 그러했던 것처럼 Ornette Colman은 프리 째즈(Free Jazz)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토 색스폰을 연주한 째즈 뮤지션이었다. 59년 콜맨이 뉴욕에 나타나서 발표한 앨범은 <썸씽엘즈>와 그 다음해에 나온 <프리 째즈> 두 장의 앨범은 일종의 핵폭탄이었다. 이로써 프리째즈는 시작된다. 째즈계는 시끄럽게 되고 말았지만 존 루이스 등 정통파의 일부는 오넷 콜맨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소니 롤린스나 존 콜트레인이나 오넷 콜맨이 등장하고부터 그들의 연주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새로운 유파가 Ornette Colman에 의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런 돌파구를 지향하는 째즈 뮤지션이 쇄도했다. 에릭 돌피(Eric Dolphy), 아치 세프(Archie Shepp), 빌 딕슨이라는 얼굴들이 이러한 새로운 째즈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고, Ornette Colman보다도 빠른 50년대 중반부터 현대 음악을 통하여 새로운 째즈의 창조를 시도하고 있던 세실 테일러(Cecil Taylor)도 여기에 동조했다. 곧 바로 뜻을 함께 하는 째즈 뮤지션이 모여 '째즈 컴포져스 길드'라는 프리 째즈의 집단을 만들고 빅 딕슨이 추진하여 64년 10월에는 뉴욕의 세라 카페에서 '째즈의 10월 혁명'이라고 명명한 데몬스트레이션 콘서트가 열리어 프리 째즈의 존재는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연이어 버너드 스톨맨이 주관한 프리 째즈를 전문으로 레코딩한 E.S.P라는 레코드 회사가 탄생하여 측면 지원을 하였다. 비밥의 혁명시대와 같이 프리 째즈의 혁명에도 많은 백인 째즈 뮤지션들이 찬동하여 동참하였다. 칼라 블레이, 폴 블레이, 마이크 맨틀러, 스티브 레이시 등이 그들이다.
한때 일이 없어 은퇴 상태에 있던 오넷 콜맨(Ornette Colman)도 65년 1월 약 2년여만에 째즈 씬으로 돌아와서 프리 째즈의 중심 인물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곧바로 콜맨의 뒤를 이어 새로운 뮤지션 알버트 아일러, 존 치카이, 마리오 브라운, 패로아 샌더슨 등이 모습을 나타내고 프리 째즈는 한층 더 충실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또 만년의 존 콜트레인도 프리 째즈 무브먼트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면 프리 째즈의 음악적인 성과라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사운드의 변화요 종래의 째즈 미학의 기준을 내면으로부터 파괴한 의식의 변혁이었다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연하며 보다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추구한 운동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째즈 발전사에서 언제나 있었던 점이다. 하지만 째즈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흑인들의 연주는 어느 정도 파괴적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째즈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변혁은 항상 감정을 추구하는 바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인데, 이는 곧 째즈라는 음악이 흑인의 감정적인 면 속에서 성장해 온 음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8) fusion jazz (1970~ )
이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무서워지는데... 아는 것만 간단히 저고 빨리 끝내야겠다. 퓨젼재즈(fusion jazz)의 시작은 그 유명하고도 위대한 이름의 마일스데이비스가 1970년에 '비취스 브루(bitches brew)'란 음반을 내놓으면서 또한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또 한번의 새로운 장르의 지평을 연 것이다. 퓨젼(fusion)이란 말은 '융화'란 뜻으로 째즈와 락(rock)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앞에서 말했듯이 전자악기( 신디사이져, 일레트릭기타, 어쿼스틱기타, 전자피아노) 등이 째즈에 도입된다. 또한 비트도 2,4비트에서 비밥의 16비트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한마디로 여기에도 프리째즈와 마찬가지로 정형의 요소를 찾아보긴 힘들단 말씀.... 그리고 요즘 왠만한 째즈뮤지션들의 음악은 다 fusionjazz라 생각하면무난하다.
9) main stream, contemporary (1980~ 현재까지....)
fusion jazz, crossover, alternative jazz, acid jazz, classic jazz등이 있다
째즈의 역사는 째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째즈는 많은 장르, 다양한 형식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째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째즈의 초기시대에서 1960 연대 프리째즈가 등장하기까지의 째즈의 역사에는 대부분 공통된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말 그대로 프리째즈(free jazz)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째즈의 기본인 swing, improvization, 싱코페이션 등은 철저히 분해 되고, cross over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장르들을 포용( 장르를 넘어 뭐가 뭔지도통 모르겠는) 하게 되는 다시 말해 째즈의 색깔을 잃어 버리게 된다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 따라서 째즈의 역사를 말하기에는 cool jazz까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그 이후의 째즈는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째즈 역사는 크게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째즈의 역사구분에는 편의를 위해 10년 단위설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며 나 또한 등장시기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우선적으로는 두 가지 시대의 구분은 정통째즈( 또는 고전째즈)와 모던째즈로 나뉜다. 정통째즈는 new orleans시대부터 swing까지이며, 이 시대의 째즈는 댄스음악이었으며, 2,4비트 위주의 소박한 이듬이었다. (jazz 음악 자체로 결코 주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그러한 경향의 반발로 bob시대가 열렸지만, 야튼 밥시대 이전의 째즈를 정통째즈라 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cool jazz의 등장은 jazz를 유흥, 댄스곡에서 감상용 음악으로 classic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때부터의 째즈를 modern jazz라고 한다. 째즈음악이 대중적인 지휘를 확보하며 classic과 같은 서열에 서기까지는 swing과 bob시대의 jazz musician들의 노력과 변화추구의 결실의 산물이라고 보는게 좋을 듯 싶다.
1) 1890연대 랙타임(ragtime)
2) 1910연대 뉴올리안즈 째즈(neworleans jazz)
3) 1920연대 시카고 째즈(cicagojazz)
4) 1930연대 스윙 째즈(swing jazz)
5) 1940연대 비밥 (bibob)
6) 1950연대 쿨째즈(cool jazz)
7) 1960연대 프리째즈(free jazz)
8) 1970연대 퓨전째즈(fusion jazz)
9) 1980~90연대 contemporary
1) ragtime jazz
째즈 역사 시초를 ragtime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으로는 랙타임엔 째즈의 기본요소가 빠져 있으므로 뉴올리안즈를 시초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랙타임이 째즈던 아니던 랙타임은 째즈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우선 랙타임을 얘기하기 앞서 째즈의 기원은 아프리카 토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미국으로 끌려오면서 아프리카 음악이 유럽의 전통적 folk와 classic과 접합하면서 흑인영가 (negro spiritual), 블루스, 노동요등으로 나오게 된다. spiritual은 흑인영가로 그들의 토템, 무속신앙이 백인 사회의 기독교로 귀화되면서 신께 그들의 불쌍한 처지를 위해 기도한다.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을 부르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을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그들에게도 자유와 해방의 꿈을 기도한다. 반면 블루스(blues)는 spiritual의 세속화된 형태라 볼 수 있다. 흑인 영가가 희망적이고 밝은데 비하면, 블루스는 'blue'에서 알 수 있듯이 암울하고 비참하고 세속적인 흑인들의 삶을 반영한다. 블루스는 1920~1930연대에 최고의 진가를 누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요는 노동을 하면서 집단적으로 부르는 가무형태로 선창자가 부르면, 다같이 합창하는 식의 call and response형식이다.
그럼 랙타임으로 넘어와서 ........ 'rag'이란 '이그러지다'라는 뜻이고 time'은 마디를 뜻한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인데 째즈를 불협화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같은 맥락이다. 피아노 건반으로 왼손은 정확한 리듬의 반주를 잡고 오른손은 화성을 무시한 채 제멋데로 피아노 건반을 뒹군다. (물론 나름데로 규칙은 있다.) 쉽게 생각해서 랙타임은 서부영화에서 보면 bar에 앉아 술마시러 오는 카우보이들은 위해 '뚱땅'거리는 피아노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지.... 대표적 인물로는 제리 롤 몰튼(jerry roll molton) 스콧조플린(scott joplin)등을 들 수 있다. 스콧조플린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그가 많은 넘버1의 히트곡들을 기록했는 지 보면 놀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영화 '스팅'에 삽입되었던 'entainer' 나 'maple leaf rag'정도를 들 수 있다.
2) neworleans jazz (1900~25)
째즈의 성립에는 크레올(creol)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레올이란 프랑스인과 흑인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크레올 계층은 신분적으론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으나, 링컨의 노예해방(1865년)이후에 지위가 약화되어 흑인과 백인의 중간정도의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정식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되었으며, 흑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경을 받게 되었다. 남북전쟁이후 많은 군악대 악기들이 민간으로 유출되면서 흑인들은 악기를 갖을 기회가 생겼다. 이런 악기의 연주를 가르친 이들이 크레올들이다. 특이 이러한 경향은 루지애나주의 뉴올리안즈(neworleans)에서 강하게 나타났고, 곧 뉴올리안즈에는 많은 연주자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악대에서 사용한 악기들은 주로 관악기들이었고( 튜바, 호른, 트럼팻, 트럼본 등), 당시의 음악은 째지는 듯한 관악기 연주로 기악곡이나 행진곡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시의 흑인들은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조직하여 파티, 연회장, 결혼식 , 카니발 등을 돌아다니며 연주했다. 흑인들은 정규적 교육을 받지 못해 화성법이나 악보를 사용했을 리 없었고, 언제나 즉흥적이었고 밴드 연주자들은 호흡을 맞춰 집단적으로 연주했다.
한편 뉴올리안즈에는 '스토리빌(storyville)이라는 곳이 있었다. 스토리빌은 지금으로 말하면 유흥가로 많은 선술집과 홍등가가 들어서 언제나 흥겹고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들이 필요한 곳이다. 당시의 많은 연주자들은 스토리빌로 모여들었다. 지금의 캬바레나 성인나이트클럽의 밴드들과 같은 처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말하자면 '딴따라'들이었다. 하기사 돈을 벌어야 음악도 하쥐.... ^^; 야튼 그렇게 해서 환경이 어땠든 째즈란 형식의 음악의 틀이 잡혀간 것이다. 최초의 재즈밴드로 알려진 것은 버디볼든(buddybolden- 트럼펫,코르넷)의 밴드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활동한 사람으로는 루이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 제리 롤 몰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키드오리(kid ory, 트럼본)등이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시드니 베헷(sidney bechet)도 그 당시부터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루이암스트롱의 곡 중 'boys from neworleans'가 있으며, 지금 뉴욕재즈의 거장 윈튼 마샬리스(재즈계의 신고전주의)의 'court of king oliver' 등을 들어보면 뉴올리안즈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많은 흑인 연주자들이 째즈를 연주했지만, 정작 레코드를 처음 낸 건 백인 주자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상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여유에서도 백인들이 첫 앨범을 낸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리지날 딕시랜드 째즈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 가 첫 째즈레코드(1917년)이다. 당시는 LP가 나오기 전에 SP라 기껏해야 3~4분의 녹음이 가능했다. 듣기로는 당시의 흑인 째즈밴드보다 훨씬 더 실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재밌는 건 'jazz'란 용어의 기원도 딕시랜드 밴드의 공연중에서 있었던 일화에서 시작됐다니 배인들의 째즈기원에 대한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건가? 그건 아니쥐...^^ 나중에 카네기홀 에서 공연을 통해 째즈가 대중적 지위와 음악계의 신분상승 또한 백인인 베니굿맨(benny goodman, 클라리넷 )이 이뤄냈다. 딕시랜드 째즈밴드의 곡 중 'fidgety feet'을 들어보면 마치 톰과 제리에 삽입된 음악같은 경쾌함이 느껴진다.
야튼, 1917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뉴올리안즈의 스토리빌은 대서양을 통해 유럽으로 가는 해군기지로 병참화되면서 스토리빌은 폐쇄됐다. 이유는 환락가 때문에 군사들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이유였다. 요즘으로는 군기지 근처에 기지촌이나 홍등가가 생기는 걸로 보면 대조적인거 같다. 야튼 많은 연주자들은 뉴올리안즈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칸사스(cansas)나 시카고(cicago), 뉴욕(newyork)등지로 이주했다.
3) cicago, cansas city (1930 ~ 1940)
많은 연주자들이 대거 이동했고, 특히 시카고는 그 중심이 되었다. 당시 시카고는 갱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알카포네 같은 거물들이 당시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영화 '언터쳐블'을 상상하면 아마 당시의 분위기를 그릴 수 있을 거다. 당시의 많은 연주자들은 확실히 뉴올리안즈 시대와는 다른 감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북쪽으로 이동한 건 째즈음악가들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조직,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한 북부의 공업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대 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구 폭동으로 하늘 높은 주 모르는 집세의 부담을 덜고자 집세파티(rent party)를 열어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연주가 시작되었고, 집단으로 함께 연주하며 음악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얼마 못 있어 쥬크박스(juke box) 등장( 쥬크박스란 동전을 넣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듣는 기계로 영화 '타락천사'에서 인상깊었쥐.. ^^)과 동네주변 갱들의 이권개입으로 얼마 안가 사라지고, 돈 없는 뮤지션들은 밴드위주로 나아가고 점차 많은 솔로주자들과 소규모밴드들이 흡수되면서 빅밴드(big band)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빅밴드는 큰 홀이나 레스토랑에서 연주를 하면서 수입을 올린다. 이러한 빅밴드에 소속되어 있는 많은 역량있는 연주자들은 스윙시대가 지나며 독립하여 이름을 날리게 된다. 즉, 밥(bob)시대와 쿨(cool)시대의 유명한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빅밴드 단원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기량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빅밴드들은 뉴올리안즈시대에와 마찬가지로 악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째즈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 즉흥연주이다. 에드립(adrib),즉흥연주(improvisation) 등은 클래식이 철저히 악보위주의 음악인데 반해 드러나는 째즈의 특징이다. 설명을 보태자면 클래식은 악보로 남아 그 음악의 혼을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등의 연주로 재생할 수 있으나, 째즈는 그렇지 않다. 단지 레코딩으로만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곡은 소재에 불과하며 뮤지션들에 따라서, 또한 같은 뮤지션일지라도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게 째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야기가 새부렸네.. ^^: 야튼................ 당시의 빅밴드들은 연주가 있기전 연습을 통해 각자의 악기가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 지만을 대충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뉴올리안즈와 비교해 시카고 째즈의 가장 큰 특징은 솔로중심의 즉흥연주라고 볼 수 있다. 뉴올리안즈 시대의 브라스밴드는 규모가 크지 않아 모두가 같이 화음을 맞추며 제각기의 음색을 냈지만, 빅밴드에서는 한 연주자가 솔로로 연주하고 나머지 밴드들은 리듬과 반주를 맞는 식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솔로연주자가 밴드를 이끌어 갔으며 밴드의 이름도 '누구누구 and his orchestra'또는 '누구누구 and his big band'라 명명돼었다. 시카고 시대에는 악기에도 변화가 있었다. 튜바나 호른등은 사라지고 대신 드럼, 키타, 콘트라베이스 등이 리듬악기로 사용된 것이다. (그동안 악기의 발전도 많았다.. ) 따라서 기악합주곡 같은 느낌이 사라진건 당연하다. 이 당시의 인기 있던 연주자들은 대부분 뉴올리안즈에서 이주한 이들로 루이암스트롱(louis armstrong, 트럼펫),죠 킹 올리버(joe king oliver, 트럼펫) , 제리 롤 몰튼(jelly roll morton, 피아노), 키드오리(kid ory, 트럼본)등 이었다. 특히 루이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hot five, 나 hot seven같은 뉴올리안즈 식 밴드를 조직하여 뉴올리안즈 스타일로 연주하다가 30연대 에는 시카고의 유행데로 자신의 트럼펫 솔로 연주와 노래가 큰 역할을 맡고 그의 밴드는 뒤에서 반주만 하는 스타일로 바꿨다. 그리하여 그는 '스타'와'쇼맨'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40연대 에는 '올 스타즈 (all stars)' 악단을조직하여 뉴올리안즈 스타일로 돌아갔다. 최초의 빅밴드 형태는 뉴욕에서 20연대 초에 플레쳐 핸더슨(fletcher henderson)에 의해 조직됐다고 한다. 그 밖으론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 같은 훌륭한 연주자가 속출돼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째즈는 시카고에서 뿐 아닌 캔사스(cansas)나 뉴욕(new york),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등지 등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다. 캔사스시티에서도 마찬가지로 빅밴드 위주의 째즈였지만, 소위 '리프(riff)스타일' 또는 '콜 앤드 리스펀스(call & response)라 불리는 새로운 핫 사운드가 캔사스시티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노동요에서 처럼 한 악절을 반복하여 연주했으며 독주자들은 '부르고 대답하는' 형태를 취했던 것이다. 대표적으론 카운트베이시(count basie, 피아노)로 빅밴드의 전성기를 연다. 카운트 베이시 밴드는 많은 걸죽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레스터영(rester young, 테너섹소폰)과 찰리파커(charlie parker, 알토색소폰) (찰리파커가 베이시 연주단에 소속되어있지는 않았다..) 등을 들 수 있다.
4) swing jazz ( 1930~45)
1929년 대공황 속의 암울함 속에서 사람들은 sweet music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1935년 트루먼의 '뉴딜 정책'으로 인해 경기가 차츰 회복되면서 음악에도 활기를 띄게 된다. 이때의 새로운 활로가 스윙째즈의 등장이었다. 스윙째즈의 선구자는 루이암스트롱이다. 그 전에도 스윙적 요소가 드러나긴 했지만 루이암스트롱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본다. 여전히 빅밴드 위주의 째즈는 계속됐지만, 시카고 째즈와 스윙째즈를 구분짓는 요소가 바로 이 스윙(swing)이다.
그렇다면 '스윙'이란 무엇일까? 째즈하면 스윙음악이라고 말해도 무리없을 만큼 ~~~~ 째즈의 전신이 되 버린 '스윙'이란 말 그대로 하면 '흔들다'란 뜻인데 ..... 하긴 스윙째즈를 들으면 누구든 손장단 발단장을 맞추게 된다... ^^ 이전까지만 해도 째즈는 2박자의 리듬이었다. 첫박에 강세를 둔 2박자 리듬이었으나 스윙시대에 오면서 째즈는 4박자 리듬으로 두 번째 박자에 강세를 두는 형식이다. 즉, 'one and two and three and four' 식으로 'and'에 강세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리듬은 심리적으로는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들이고 박자와 리듬에 빨려들어가는 흥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데.....음.....모.... 잘은 모르지만 난 그런거 같다. 또한 스윙째즈의 특징으로는 싱코페이션(물론 랙타임때부터 계속 되어왔지만)을 들 수 있다. 싱코페이션이란 '당긴다' '땡겨주다'란 뜻인데 ... 가령 4분음표 2개가 연이어 있을 때,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2/3, 1/3의 비율로 나누어 긴장과 완화를 전달한다. 야튼 째즈음악을 들으면서 뒷꿈치를 들석이며 4박자가 맞춰진다면 스윙이라 생각해도 무난할 것이다. (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 ^^; , 참고로 그렇게 들을려면 리듬파트를 들어야겠쥐....즉, 베이스, 드럼에 귀를 귀울이면 스윙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겨..)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베니굿맨(bennygoodman, 클라리넷)은 째즈의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당시 베니굿맨의 밴드는 여기저기서 실패를거듭한다. 베니굿맨이 guest로 나와 스윙째즈를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고, LA로 건너가 팔로마 볼륨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를 필두로 베니굿맨은 카네기 홀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갖게 되고 이로써 째즈는 클래식과 같은 고급음악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며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베니굿맨의 음악은 얼마전 TV선전 모 맥주회사의 광고 '라라라~~ '시리즈 2에 나왔다..'sins sing sing'이라는 '라라라'음악중 리듬 빠른거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 연주가로는 '듀크엘링턴(duke ellington, 피아노), 카운트베이씨(count basie, 피아노), 해리제임스 (harry james, 트럼펫), 콜맨호킨스(coleman hawkins, 색소폰), 글렌밀러(glenn miller,트럼본), 아트 타툼(art tatum, 피아노)등을 들 수 있고 보컬로는 너무나도 유명한 빌리할러데이(billy holyday), 엘라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등과 처음으로 '오빠부대'를 동원한 핸섬한 프랭크시나트라(frank sinatra)등이 있다. 참고로 얼마전 글렌밀러의 'in the mood' 또한 모 신발회사 광고에 삽입된 적이 있다.
5) bibob (1940~1955)
이 시기에 와서는 째즈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독창적인 음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러한 비밥의 시대를 처음 연건 찰리파커(charlie praker, 색소폰)이다. 이 시기는 한창 2차세계대전이 일어난 때였고 '군수물자 조달청'에서 '댄스'를 과세대상에 포함시켜 째즈는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고 대다수의 빅밴드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꼭 여기에 따른 반발이었는 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별안간 사람들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을 듣게 된다. 그건 비밥(bibob)의 시작이었고, 찰리파커(charlie parker)를 선두로 디지길레스피(dizzy gillespie, 트럼펫), 텔로니오스 몽크( thelonious monk, 피아노),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등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시도된다. 비밥의 특징은 강한 음색과 빠른 리듬, off bit(스윙에서도 이건 같지만..^^)등으로 스윙이 리듬에 충실한 반면 비밥은 멜로디에 충실하게 되면서 도저히 따라 출 수 없게 끔 빠르게 연주된다. 또한 스윙은 음역이 단순한 반면에 비밥은 무척 화려해지고 현란해진다. 디지길레스피의 'night in tunisia'를 들어보라.. .처음엔 쿨(cool)아냐? 하다가 어느순간부터 비밥의 본색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의 재즈는 댄스와 결별하게 된 것이다. 스윙시대만 하더라도 째즈연주자들은 ( 유명한 솔로연주자들을 제외하곤) 음악이 끝나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사라져 버렸고, 단지 사교댄스를 위한 부유층백인들의 소도구에 불과했었다. ( 대부분이 그랬다는 것이다. .... 물론 뉴욕할렘의 연주자들의 경우야 달랐겠쥐... 그들은 흑인과 어울렸으니깐..) 야튼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빅밴드는 해체되고 다시금 소규모 밴드 위주의 캄보 밴드(combo band) 가 구성되게 된다. 캄보밴드는 4~5명의 연주자들로 이루어졌으며 드럼, 베이스, 피아노, 섹소폰 or 트럼펫으로 이뤄진 밴드다.... ( 대부분 그 후로 전자악기의 사용을 제외하곤 째즈밴드는 이런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되 온다..) 그렇게 그들은 소규모 밴드로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해 나가게 된다. '밥'은 그냥 아무 뜻 없이 내는 소리다.( 이런 건 루이암스트롱이 잘 했다던데....이런 싱어를 스캣싱어라 한다...) 언젠가 루이암스트롱이 연주도중 악보를 떨어뜨려 '뚜비두..밥밥...밥밥...~~~~ ' 이라는 소리로 리듬을 맞추며 재치로 위기를 모면했다하여 '밥'이란 말이 나왔단다... 역시나 이 비밥에서도 쉴새 없고 끊이지 않는 리듬과 빠른 비트, 높은 음계의사용에서 겨우 '비비비 밥밥밥..~~~' 하며 입으로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우수운 유래가 된게 아닌가...... 40년대의 비밥의 즉흥연주는 당시에는 외면당했다. 이런 특이한 음악은 쿨째즈로 오면서 예술적음악으로 분류하면서 대중적으론 스윙에게 계속 압도당하게 된다. 야튼.... 이렇게 해서 비밥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고 50년대 한국전쟁과 동시에 cool 이 선보이게 된다.
6) cool jazz (1950~1960)
2차대전이 끝나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한마디로 쿨했다. 왜냐면 냉전(cold war)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광등의 발명과 공중파 라디오의 확산과 스테레오, 12인치 LP의 등장은... 이 때의 큰 변화이다. 당시 전후의 미국인들은 짧은 머리에 파리한 색체의 dressy한 분위기가 유행했단다. 음악 또한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듣게 되고.. 쿨(cool)한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음악을 즐겨 들었다. 째즈가 그런 분위기에 편승했는지는 모르지만 뉴욕을 중심으로 그런 기운이 퍼져나갔고,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냉정한 분위기로 흘렀다. 그렇다 해도 결코 리듬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윙시대 이후의 리듬은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야튼, 이러한 분위기의 대표적 인물이 '마일스데이비스(miles davis, 트럼펫)이였다. 마일스데이비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며 그는 재즈(모던째즈라 하는게 더 옳을지도..)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해도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특출한 인물이다. 가끔 찰리파커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둘이 추구하는 색깔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마일스데이비스는 찰리파커 밑에서 배웠으나 오히려 레스터영의 차분하고도 지적인 쿨의 경향을 따랐다. 야튼.. 찰리는 천부적으로 감각을 타고났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일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추진 못했다. 마일스의 위대함은 그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음악에서 무서우리만큼 완벽을 추구한다. ( kind of blue 앨범 중에서 'all blues'를 들어보라...) 이때부터 째즈는 악보에 꼼꼼히 적어나가며 학문적인 연구마져 이뤄진다. ... 악보에 충실하면서 각 세션(session)맨들과의 조화 형식에 있어선 '테마(멜로디) -> 솔로 -> 테마(멜로디)로 정형화 해간다. ( 사실은 더 복잡한 구조지만..간단하게..^^) 이 시기에 있어서 또다른 특징은 클래식의 화성법, 대위법, 12음법 등의 차용등이다. 그러나 결코 클래식을 따라한건 아니고... 클래식의 기법만을 빌린 것임...~! 따지면 클래식도 째즈의 기법들을 많이 빌려간다. 예를 들어....음 조쥐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rapsody in blue)'같은 곡들... 또 음.... 드뷔시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이들이 그랬다나? 하여간, 이 시기의 재즈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차분해 지고 조용해졌으며, 지적이며, 쿨해졌다. 사람들은 라디오와 스테레오, LP를 통해 째즈를 감상용 음악으로 듣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 연주자로는 마일스데이비스(miles davis)를 기수로 하여 리 코니츠(lee konitz, 앨토색소폰), 레니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피아노), 데이브브루백( dave brubeck, 피아노) 마지막으로 모던째즈 4중단(modern jazz quortet)등을 들 수 있다.
7) free jazz (1960~ 이후.....)
1950년대 말에는 흑인 째즈 뮤지션들의 민족의식이 고조되었고 인종 차별에 항거하는 형태를 갖춘 째즈도 몇몇 작품이 만들어졌다.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소니 롤린스등이 그러한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화된 사조는 아니었고 음악적인 성과라고도 반드시 결론지을 수도 없었다. 그러한 사조보다도 째즈 팬들에게 커다란 쇼크를 가져다 준 것은 58년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오넷 콜맨(Ornette Colman)이라는 뮤지션이다.그는 원시적인 생동감과 째즈 특유의 무기오 단숨에 째즈 씬을 정복해버렸다.이전의 째즈에 습관화된 째즈 팬들의 귀에는 어떤 표현하기 힘든 기묘하면서도 조잡한 사운드로 들리기도 했다. 그는 기법과 리듬을 빼 버린 것 같은 연주를 째즈 팬들 면전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변형되고 추상화된 연주는 째즈의 미학적 의식을 변혁시킬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사운드로 가득차 있었다. 하드밥이 일어난 시기와 같이 찬반 양론이 휘몰아 쳤고 일부서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구 치부하는 부류도 적지 않았으며 주의깊게 들어보면 그들의 파괴적이고 기존의 틀을 부정하는 사운드의 이면에는 새로운 째즈의 탄생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으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프리 째즈를 단순하게 실험적인 째즈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당위성이 없다. 58년 오넷 콜맨(Ornette Colman)이 처음으로 째즈 씬에 나타났을 때는 그토록 기묘하게 울리던 연주도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째즈 역사의 한 토막으로서 명쾌한 사운드를 가진 째즈의 전통속으로 흡인되었다. 그렇다고 오넷 콜맨류의 연주가 결코 째즈의 사조로부터 제외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밥이 그러했던 것처럼 Ornette Colman은 프리 째즈(Free Jazz)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토 색스폰을 연주한 째즈 뮤지션이었다. 59년 콜맨이 뉴욕에 나타나서 발표한 앨범은 <썸씽엘즈>와 그 다음해에 나온 <프리 째즈> 두 장의 앨범은 일종의 핵폭탄이었다. 이로써 프리째즈는 시작된다. 째즈계는 시끄럽게 되고 말았지만 존 루이스 등 정통파의 일부는 오넷 콜맨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소니 롤린스나 존 콜트레인이나 오넷 콜맨이 등장하고부터 그들의 연주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새로운 유파가 Ornette Colman에 의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런 돌파구를 지향하는 째즈 뮤지션이 쇄도했다. 에릭 돌피(Eric Dolphy), 아치 세프(Archie Shepp), 빌 딕슨이라는 얼굴들이 이러한 새로운 째즈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고, Ornette Colman보다도 빠른 50년대 중반부터 현대 음악을 통하여 새로운 째즈의 창조를 시도하고 있던 세실 테일러(Cecil Taylor)도 여기에 동조했다. 곧 바로 뜻을 함께 하는 째즈 뮤지션이 모여 '째즈 컴포져스 길드'라는 프리 째즈의 집단을 만들고 빅 딕슨이 추진하여 64년 10월에는 뉴욕의 세라 카페에서 '째즈의 10월 혁명'이라고 명명한 데몬스트레이션 콘서트가 열리어 프리 째즈의 존재는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연이어 버너드 스톨맨이 주관한 프리 째즈를 전문으로 레코딩한 E.S.P라는 레코드 회사가 탄생하여 측면 지원을 하였다. 비밥의 혁명시대와 같이 프리 째즈의 혁명에도 많은 백인 째즈 뮤지션들이 찬동하여 동참하였다. 칼라 블레이, 폴 블레이, 마이크 맨틀러, 스티브 레이시 등이 그들이다.
한때 일이 없어 은퇴 상태에 있던 오넷 콜맨(Ornette Colman)도 65년 1월 약 2년여만에 째즈 씬으로 돌아와서 프리 째즈의 중심 인물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곧바로 콜맨의 뒤를 이어 새로운 뮤지션 알버트 아일러, 존 치카이, 마리오 브라운, 패로아 샌더슨 등이 모습을 나타내고 프리 째즈는 한층 더 충실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또 만년의 존 콜트레인도 프리 째즈 무브먼트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면 프리 째즈의 음악적인 성과라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사운드의 변화요 종래의 째즈 미학의 기준을 내면으로부터 파괴한 의식의 변혁이었다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연하며 보다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추구한 운동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째즈 발전사에서 언제나 있었던 점이다. 하지만 째즈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흑인들의 연주는 어느 정도 파괴적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째즈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변혁은 항상 감정을 추구하는 바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인데, 이는 곧 째즈라는 음악이 흑인의 감정적인 면 속에서 성장해 온 음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8) fusion jazz (1970~ )
이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무서워지는데... 아는 것만 간단히 저고 빨리 끝내야겠다. 퓨젼재즈(fusion jazz)의 시작은 그 유명하고도 위대한 이름의 마일스데이비스가 1970년에 '비취스 브루(bitches brew)'란 음반을 내놓으면서 또한번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또 한번의 새로운 장르의 지평을 연 것이다. 퓨젼(fusion)이란 말은 '융화'란 뜻으로 째즈와 락(rock)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앞에서 말했듯이 전자악기( 신디사이져, 일레트릭기타, 어쿼스틱기타, 전자피아노) 등이 째즈에 도입된다. 또한 비트도 2,4비트에서 비밥의 16비트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한마디로 여기에도 프리째즈와 마찬가지로 정형의 요소를 찾아보긴 힘들단 말씀.... 그리고 요즘 왠만한 째즈뮤지션들의 음악은 다 fusionjazz라 생각하면무난하다.
9) main stream, contemporary (1980~ 현재까지....)
fusion jazz, crossover, alternative jazz, acid jazz, classic jazz등이 있다
출처 : 싸이클럽 검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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